시인 주요한의 문학세계(친일문학에 대해) 다운받기
 


“아아 날이 저문다. 西便하늘에, 외로운 江물 우에, 스러져가는 분홍빗 놀………아아 해가 저물면 해가 저물면, 날마다 살구나무 그늘에 혼자우는 밤이 또 오것마는, 오늘은 四月이라 파일날 큰 길을 물밀어 가는 사람소리는 듯기만 하여도 흥셩시러운 거슬 웨 나만 혼자 가슴속에 눈물을 참을 수 업는고?……”(‘창조’ 창간호,1919년 2월)

4월 초파일 저녁 대동강변에서 벌어진 불놀이 장면을 보고 죽은 애인을 그리는 애상조의 이 시는 송아(頌兒) 朱耀翰(1900~1979년)의 대표작 ‘불놀이’다. 이 시는 종래 우리 시의 기본형식을 거부하고 상징적인 수법과 대담성 때문에 흔히 우리 문학사에서 ‘최초의 자유시’로 불려왔다. 특히 일제하 우리민족의 아픔과 시대상황을 민족정서로 표현했다 하여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 왔다. 우리 역사앞에 처음 등장한 ‘시인 주요한’의 첫출발은 이처럼 좋았다.
주요한은 20세기가 시작된 1900년 10월 평양 목사집안의 8남매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12년 숭덕소학교를 마치고 아버지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는 메이지(明治)학원에서 중등과정 5년을 마치고 도쿄 제1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문학에 심취해 있던 그는 이 무렵 도쿄유학생이자 같은 문학청년 金東仁을 만나 우리나라 최초의 순수문예 동인지 ‘창조(創造)’를 탄생시킨다.‘3·1만세의거’가 터지기 꼭 한 달 전의 일이다.그의 대표작 ‘불놀이’도 바로 여기서 선을 보였다.
‘창조’ 2집이 나올 무렵 고국에서 ‘3·1만세의거’가 일어나자 그는 서둘러 짐을 싸서 귀국했다. 그러나 그의 부친은 다시 도쿄로 돌아갈 것을 강권하였다. 동생 耀燮(작가·72년 작고)이 몰래 삐라를 복사하여 돌리다가 체포되자 장남인 그에게까지 화가 미칠 것을 우려하였다. 결국 도쿄로 되돌아온 그는 한동안 방황하다가 한인(韓人)YMCA 총무 崔承萬을 만나 상하이(上海)로 가라는 권고를 받는다. 시인이자 애국청년으로 보낸 그의 상하이시절 9년은 이렇게 시작됐다.
상하이는 그를 반겼다. 당시 임시정부에서는 기관지 ‘독립신문(獨立新聞)’발간을 준비중이었는데 문사(文士)가 필요했었다.‘독립신문’은 그 해 8월 21일 창간호를 냈다. 춘원 李光洙가 사장겸 주필이었다. 그는 춘원 밑에서 편집국장겸 기자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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