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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이라든지 ‘덕’은 나의 상상력의 세계에선 매우 생소한 말이다. 현대과학의 눈부신 발전과 그것으로 인해 제공되는 편의성으로 인해 나는 이미 ‘외눈박이 물고기’가 되었다. 어떠한 주장이나 결론을 접했을 때 그것이 과학적인가 아닌가를 우선 살핀다. 인간의 심성이나 정신세계를 주로 다루는 동양의 사상이나 유학은 과학적 근거의 부족으로 잦은 회의에 빠져들게 한다. 더욱이 ‘공자=인’, ‘노자=무위’라는 아주 단편적인 지식만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 정도가 더하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라는 말처럼 나의 비판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도 그들은 궁색한 변명조차 할 수 없다. 허나 ‘오랑캐로 사는 즐거움’이라는 책은 중국 사상의 매우 큰 범위를 불과 300여 페이지 정도로 다루고 있지만 나의 무지를 조금이나마 깨우치게 해 주었다. 아직도 너무나 무지하지만 이 책으로 인해 얻은 조금의 깨달음을 끄적거려 보겠다.
우리는 흔히들 ‘이 세상에 보편적 진리는 없다’라고 말한다. 나 역시 이 말에 매우 공감한다. 왜냐하면 그나마 가장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는 살인의 금제 역시 어느 상황이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A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B국을 쳐들어 간다면 B국의 군인이나 사람들은 과연 살인의 금제를 지키며 A국의 군인들을 중국집에 들어오는 손님처럼 반갑게 맞이해야 하는 것일까? 제 삼자의 입장에 선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백이면 백 아니라고 할 것이다. (진리는 없다고 말하는 내가 없다는 그 사실에 대해서는 진리라고 생각하는 내 스스로가 매우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그 상황에서는 작게는 자신과 가족의 생존, 크게는 나라의 존망의 문제로 살인에 대한 정당성이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의 차이로 인해 공자 역시 ‘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제자들의 질문에 모두 다르게 대답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점이 하나 생긴다. ‘부자의 시체’라는 에피소드에서 나오는 등석이라는 인물의 행동이 과연 돌에 맞을 짓이었나 하는 점이다. 등석은 자신에게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최선의 답변을 해 주었다. 그런데도 공자는 3000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후대의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고 등석은 돌을 맞았다. 처음에는 그 이유를 올바름에서 찾았다. 허나 좀 더 생각할수록 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등석의 행동이 그릇됐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공자의 언행이 올바르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공자가 살던 춘추시대는 전국시대만큼은 혼란스럽지 않았지만 결코 백성들이 ‘살기 좋다’, ‘살 맛 나는 세상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니였다. 그런 시대의 상황에 공자가 말하는 ‘인’이라는 것은 제후들에게 소귀에 들려주는 ‘경’일 뿐이고 또한 결과적으로 보면 3000명이라는 엄청난 수의 제자를 거느렸음에도 춘추시대에서 전국시대로 가는 기류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한 것을 보면 후진양성에도 성공했다고 할 수 없다. 유학의 발전을 꼽으며 나의 생각에 반박할지는 모르겠으나 백성들이 독수리에게 간을 뜯기는 프로메테우스와도 같은 상태에서 인은 무엇이고 예는 어디다 쓰겠는가? 소말리아에서 굶어 죽어가는 아이에게 ‘인’을 가르치는 것과 같을 것이다. 나는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서 공자 역시 양가론자가 되고 소크라테스 역시 소피스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걸리버가 소인국에서 거인 취급을 받고 거인국에서 난장이 취급을 받은 것은 주변에서 상대적으로 평가된 것일 뿐 걸리버가 갑작스레 작아졌다 커졌다 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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